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마르쿠스 빕사니우스 아그리파 (문단 편집) == 아우구스투스와의 관계 == 아우구스투스와의 우정은 평생 동안 연인 사이에 비유할 만큼 깊었다. 아우구스투스는 뜻을 한 번 정하면 바꾸지 않는 냉혹함으로 유명했는데, 마르쿠스는 그런 아우구스투스가 결정을 재고하거나 판단을 바꾸게 할 수 있는 삼인방 중 한 명으로 유명했다. 아우구스투스의 누나 [[소 옥타비아]], 아우구스투스의 아내 [[리비아 드루실라]], 그리고 아그리파가 그 삼인방인데, 이들 중 가족관계인 옥타비아와 리비아 드루실라를 논외로 치자면 아그리파는 마이케나스 등 아우구스투스의 타 친구들과 달리 '''유일하게 아우구스투스의 판단을 뒤집을 수 있는 친구'''였다. 이처럼 아우구스투스에게 아그리파는 특별한 존재였는데, 아우구스투스가 일평생동안 가장 신뢰하고 의지한 이는 늘 아그리파였다. 이는 아우구스투스의 황후 리비아 드루실라나 황제의 누나 옥타비아 역시 마찬가지라서, 이들 역시 아그리파를 신뢰하고 그를 지지했다. 그래서 아우구스투스는 기원전 27년 이후에도 아그리파의 권한과 권력을 계속 키워주며 중용했다. 후일, 아우구스투스가 중병에 걸려 죽을 위기에 처할 순간에도 조카이자 사위 [[마르쿠스 클라우디우스 마르켈루스(아우구스투스의 조카)|마르켈루스]]를 건너뛰고 아그리파에게 자신의 반지와 인장을 맡겼다[* 아우구스투스는 열병에 걸려 진짜 죽을 뻔했을 때, 아그리파와 함께 원로원파에 속한 [[그나이우스 칼푸르니우스 피소(기원전 23년 집정관)|그나이우스 칼푸르니우스 피소]]도 함께 불러 두 사람에게 자신의 권한을 비상시에 넘기도록 했다. 물론 이때도 피소보다 아그리파가 아우구스투스 서거시 실질적인 직위계승자였다.]. 이에 황제의 조카이자 사위였던 마르켈루스는 자신의 스승이기도 한 아그리파가 장차 자신에게 걸림돌이 된다고 생각해 격렬하게 질투하였다. 따라서 마르켈루스 파벌은 공적, 사적으로 비리 혐의도 없고 비난거리도 안 보이는 아그리파가 시골 농부의 아들이라는 이유를 들어 적개심을 드러냈고 공개적으로 아그리파를 헐뜯었다. 하지만 아우구스투스는 이런 정치공작 뒤에 마르켈루스가 있음을 명확히 인지한 후 아무 이유 없이 비난받은 친구를 보호해주고 인격적 비난을 멈추라고 단호히 경고해 비난을 중지시켰다. 그러면서 아우구스투스는 친구를 로마제국 동방 일대를 담당하는 총책임자로 로마를 잠시 떠나도록 조치를 취해 아그리파의 위상을 더욱 높여줬다. 아우구스투스는 냉정을 넘어 냉혹하기까지 한 성격에, 필요할 때는 가식을 부리거나, 위선을 부리는데도 능숙해서 속내를 전혀 알 수 없고 친해지기 무척 어려운 사람으로 유명했다. 그런 아우구스투스에게 아그리파는 부하나 동료를 넘어 유일한 친구였고, 인생의 동반자였다. 따라서 아우구스투스는 아그리파를 단순히 개인적인 친구이자 조언자로 여기지도, 명령받는 부하나 제국의 2인자 따위로 생각하지 않았다. 아그리파는 친구이자 주군인 아우구스투스를 위하여, 그리고 자신의 약점인 신분적 문제 때문에 목숨을 걸고 이룬 성과를 모두 아우구스투스에게 공을 돌렸고, 아우구스투스 또한 아그리파가 결정한 모든 명령을 자신이 내린 명령과 동일시하고 친구 아그리파의 명령은 곧 자신의 명령이라고 했다. 또 아우구스투스는 자신만 누릴 영예 중 일부를 늘 자신의 친구인 아그리파도 누릴 수 있게 해줬고, 친구 아그리파에 대한 폄훼, 모독은 자신에 대한 도전으로 규정해 엄하게 대했다. 심지어 아우구스투스는 기원전 31년 악티움 해전 개선식 직후부터 자신의 후계자에 가장 가까운 남자친족 3명(마르켈루스, 티베리우스, 드루수스)의 군사교육과 행정 및 인성교육을 담당한 스승이자 상관 자리를 아그리파에게 맡겼다. 이는 어린 시절부터 친구가 많지 않고, 좀처럼 속내를 드러내지 않았던데다 자신에게 위협이 될 싹을 처음부터 용납하지 않은 아우구스투스의 삶과 행적을 생각해보면 놀라울 정도인데, 마이케나스도 못 누린 영광이었다. 이런 관계 때문에 아우구스투스는 생사고락을 함께 한 아그리파가 자신보다 일찍 죽자 큰 충격에 빠졌고[* 아우구스투스 자신이 열병에 걸려 생사를 오갈 때 가족도 아니고 타인인 아그리파에게 반지와 인장을 넘겼으니, 아그리파는 사실상 왕위계승자나 다름없었다.] 진심으로 슬퍼했다. 그래서 그는 장엄한 대규모의 장례식을 치르게 한 뒤, 자신의 친구 아그리파를 위해 무려 한 달간 국가 애도기간까지 정하게 했고 본인 역시 죽은 친구를 무척 그리워하면서 애도기간을 지켰다고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